참 욕심 많은 사찰이다. 1300년이 넘은 고찰의 위엄에 구석구석 이야기가 배어 있고, 국보에서 보물까지 진귀함은 물론,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우리에게 유명한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무량수전과 배흘림 기둥…. 이 계절의 부석사가 궁금해졌다.
◆이야기가 많은 사찰
배경부터 남다르다.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승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위치 또한 유별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 엄밀히 말하면 소백산맥 봉황산에 자리를 잡았다. 676년 창건된 이 사찰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신라, 고려, 조선, 한국의 역사를 함께 했고 이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면면을 굽어보았을 것이다.
한편, '부석사'(浮石寺)라는 말에는 영원하다는 뜻이 있고, '무량수전'(無量壽殿)은 극락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셈이다. 처음부터 이런 포부로 건립을 했으니 자리로 보나 건물의 형태로 보나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구조물들로 보나 의미 없이 툭 떨어진 것이 없다. 결국 부석사의 입구에서 무량수전까지 점차 위로 향하는 길이 극락을 향한 길인 셈이다. 잠시 숨이 차오르긴 했지만 극락에 오르는 노력치고는 꽤 쉬운 방법이 아닌가.
일주문에서 무량수전까지의 계단이 108개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의미를 알 듯하다. 극락까지 오는데 속세의 번뇌는 하나씩 경험하고, 밟고, 지나치고…. 그러면서 극락에 가까워지는 것. 어떻게 이런 것까지 계산해 가며 지었는지, 조상들의 치밀함이 현대의 합리성을 앞선다.
삼층석탑
목어와 법고
◆보물이 많은 사찰
부석사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고, 무량수전 하면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이다. 그렇지만 부석사가 어디 무량수전뿐일까. 이를 비롯해 국보 5점, 보물 6점, 도유형문화재 2점 등 사찰 자체가 보물창고다. 다시 말해 이곳의 눈에 보이는 것, 발 닿는 곳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워낙 오래된 사찰이다 보니 이들은 한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거치며 보수·중축했거나 하나씩 늘려간 것들이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때 창건했지만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건물이고 무량수전 앞의 석등은 9세기, 안양루는 조선시대 건물이다. 그러니 이곳이 건축양식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찰과 건축박물관'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현판들도 대단하다. 공민왕이 쓴 '無量壽殿'(무량수전)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浮石寺'(부석사)가 유명한데, 공민왕의 것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찰 편액으로 650년 전 모습 그대로 무량수전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형식이 또 독특하다. 한 줄로 늘어 쓰지 않고 두 글자씩 두 줄로 써서 정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글자색이 바랬지만 사액 당시엔 금색의 창연한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현판 테두리의 초록색만 남았다. 이 낡아진 색감이 오히려 멋스러운 것은 세월의 가치 때문이겠지….
그림도 있다.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일단 여기는 '있다' 하면 최고(最古)이고, '썼다' 하면 왕이나 대통령이니 웬만한 것이 어디 명함이나 내밀겠나 싶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찰
결국 눈의 즐거움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때마다 기꺼이 오게 되는 이유는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그 멋스러움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계절은 가을이다. 그러나 겨울의 부석사가 좋은 이유는 잎을 잃은 앙상한 나뭇가지들 덕분에 사찰 고유의 선과 색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범종각, 안양루, 마침내 무량수전까지…. 부석사는 입구부터 시작해 문과 건물의 사이사이가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하는 편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2층이, 뒤에서는 1층이 되는 범종각이나 안양루가 있다. 이 두 개의 게이트를 거쳐야만 다음으로 오를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기둥과 문을 오르면서 다음 층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점차 새로운 공간을 다시 여는 듯한 신선함이 있다. 보물을 한눈에 열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감질나게 공개해 여행자와 심리적 '밀당'을 하는 기분이랄까. 역시 신비함이 있어야 호기심도 더 생기고, 비로소 그것을 보았을 때 성취감이 생기는 법. 새로운 층에 오를 때마다 반대편으로 보이는 소백산 자락의 경관도 대단하고, 층층 보이는 건물과 구조물과 정원을 보는 맛도 그럴 듯 하다.
그리고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무량수전. 그 자태 때문인지, 언덕과 계단을 올라서 숨이 차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온전한 모습을 보기 전에 심장은 충분히 두근거리고 있다.
무량수전은 그야말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색감이다. 오렌지 색에 가까운 노란색, 이것은 아마도 황금색을 의도한 것 같다. 그리고 황토빛 자색, 창과 문의 배경이 되는 옥색은 색을 칠하지 않은 나무 기둥과 세련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사각형 현판과 새침한 듯 부드럽게 곡선을 담당하고 있는 배흘림 기둥, 세로로 쭉쭉 뻗은 단순한 창살이 클래식 하면서도 심플해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는 모던함마저 느껴진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만이 가진 유니크한 멋이 있다. 그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불전이다.
이를 보여주는 방식 또한 독특하여 안양루와 무량수전만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30도를 틀어 놓았다. 살짝 짝다리로 서 있는 모델의 포즈라고나 할까. 덕분에 아래에서 올려 볼 때 그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것을 또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안양루가 정면을 막고 있다. 안양문을 통과하면 또 하나의 보물이 무량수전을 가로 막고 있는데 소박한 석등이다. 큼직한 연꽃 조각이 기둥을 받치고 있는 우아한 석등은 크지 않고 짜임새가 있어서 무량수전과는 과하지 않게 딱 떨어지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석등 앞에는 언제나 기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무량수전을 앞에서 보고,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돌아와 현판을 올려다 보고, 배흘림 기둥을 쓰윽 한번 만져보고…. 그리고 남들처럼 그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무량수전은 몇 명의 사람들에게 몇 번의 배경이 되었을까. 그림이 필름이 되고, 필름이 데이터가 되는 동안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켜 준 것에, 그 세월 동안 보호하고 전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머니위크]송세진의 on the Road/ 부석사
머니위크 송세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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